미국-북한, 미국-이라크 관계 등 극단으로 치닫는 요즘 상황에서 서로가 승리하는 소위 '윈-윈 협상'이 절실합니다. 국제 정치만 협상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 학교, 가정 등 모든 세상이 협상을 진행하는 테이블인 셈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은 꼭 읽어 볼만합니다. 바로 허브 코헨(Herb Cohen)이 쓴 '협상의 법칙(You Can Negotiate Anything)'으로, 이 책은 협상을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코헨은 인수 ·합병 등 비즈니스는 물론 지미 카터, 레이건 정부를 위해 테러리스트와도 담판을 벌인 협상 전문가입니다. 한글 번역본이 나와 있고 해석도 무난하지만 원문 그대로 해석해서 읽는 재미가 약하다는 게 단점입니다. 그래서 순서와 내용을 완전히 바꿔 소개합니다.
■ 협상을 좌우하는 3요소-정보·시간·힘
협상이란 돈·명예 등 내가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사람을 설득하는 일과 관련된 지식과 행동이다.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정보·시간·힘이다. 내가 말하는 '협상의 법칙'은 이 3 요소가 상대보다 부족하면 패하고 우세하면 승리한다는 것이다. 정보와 시간, 그리고 힘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떤 작용을 하는 지 다음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 1. 힘과 정보를 이용한 막내 사례
어린 아이도 협상을 벌여 자신이 필요한 걸 얻어낸다. 나와 내 아내, 그리고 두 아이는 먹성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9살짜리 셋째 막내 아들은 먹는 걸 싫어해 대꼬챙이처럼 말랐다. 심지어 어디서 주워 온 아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리 식구와 다른 점이 많다. 외식을 하기 위해 싫다는 막내를 억지로 차에 밀어 넣고 식당에 간 적이 있다.
1단계로 식구를 귀찮게 한다(자신의 힘을 보인다)
처음에 막내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저는 식탁 밑으로 들어갈 께요." 아내는 말렸지만 나는 막내를 포함하면 5인분을 시켜야 되지만 막내가 안보이면 4인분을 시키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 허락했다. 식당에 들어간 지 처음 10분간은 별일이 없었다. 그러나 식사가 나오자 축축한 손이 내 발을 어루만지더니 이번에는 아내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그래서 막내를 식탁 밑에서 끄집어내 내 옆에 앉히고 식구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2단계로 형편없는 식당이라고 악을 써댄다(정보를 활용한다)
이번에는 막내가 의자에 서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초가 지나자 막내는 큰 소리로 "여기는 형편없는 식당이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 별 수가 없었다. 막내를 다시 식탁 밑으로 밀어 넣고 서둘러 돈을 내고 집으로 갔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막내를 식당에 데리고 간 적이 없다. 막내는 바로 자신이 가진 힘과 정보를 활용해 목적(식당에 안간다)을 이룬 것이다. 물론 협상이 거칠었지만 말이다.
사례 2. 정보·시간·힘에서 열세였던 냉장고 구입 사건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 보니 축축한 게 뭔가 이상했다. 마루를 보니 냉장고에서 나온 물로 주변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는 냉장고를 사기 위해 정찰제를 실시하는 '시어즈'로 갔다. 대형 가전매장에 니 판매원이 한가하게 우리를 맴돌며 가끔 "결정하셨습니까?" 따위의 질문을 던진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정보·시간·힘 이 세 요소에서 판매원에 비해 열세다.
정보에서 판매원이 우위
우선 판매원은 시어즈는 물론 경쟁 업체의 가격까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대형 가전은 화장품과 달리 꼭 필요한 실 수요자가 찾는 매장이다. 그래서 가격만 맞으면 당신이 당장이라도 살 것이라는 걸 판매원은 오랜 경험으로 잘 안다. 더구나 판매원은 당신에게 정보를 주는 대신 되받아치기 전법으로 당신에게 정보를 주는 데 인색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격을 좀…"하고 정보를 얻을라치면, 판매원은 "시어즈말고 다른 매장의 가격은 어떻던가요?"라는 식으로 되묻는다.
시간에서도 불리
시간 면에서도 당신은 불리하다. 마누라는 "내일까지 냉장고를 안 사면 1백달러가 넘는 고기와 생선이 썩어 버린다"고 투덜댄다. 거기에 더해 철없는 아이들은 냉장고안에서 숨바꼭질을 해 잘못하면 냉장고에서 질식사 같은 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냉장고를 사야만 할 상황이다.
힘에서도 당신은 열세
힘은 어떤가. 정찰제는 이미 당신에게 이 곳은 물건을 깎을 수 없는 곳이란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바로 선례의 힘으로, 당신은 지금까지 정찰제 매장에서 물건을 깎은 적도 없고, 깎는 걸 본 적도 없다. '선례의 힘' 외에 당신을 짓누른 건 아주 말끔하게 인쇄돼 천장에 걸린 가격표. 마치 하나님이 인쇄해 매장 천장으로 뚝 떨어뜨린 물건처럼 보여 도저히 깎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가격표가 갖는 이런 힘을 '합법성의 힘'이라고 부른다.
그럼 정찰제 매장에서는 가격을 못 깎는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다음 편에는 정찰제 매장에서 냉장고 가격을 깎아 보겠습니다.
중앙일보 미디어마케팅연구소 송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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