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착하다는 정의를 살펴봅시다.
착―하다 [차카―][형용사][여 불규칙 활용]
1.(마음씨나 행동이) 바르고 어질다. 선(善)하다.
¶착한 행동.
2.마음씨가 몹시 곱다. ↔악하다.
착―히[부사].
우선 사전을 인용하겠습니다. 요즘은 인터넷덕분에 상당한 수고를 더네요. 사전을 보니 착하다라는 말은 선하다나 곱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씨'가 곱다는 뜻이지만 요즘에는 약간 의미가 변형되서 '자태'가 곱다는 그런 뜻으로도 쓰이는 것 같습니다.
마음씨가 바르고 어질다 또는 선하다라는 말은 솔직히 바로 이런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잣대가 없습니다. 어떤분이 이미 말씀하신대로 상대적인 평가로만 가능한것이죠. 자신이 아무리 자신은 선하다라고 믿어봐야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선하다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절대적인 선한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비교해서 착한지 아닌지 어느정도 판단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에는 절대적인 존제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는 착하다는 말의 사전적의미를 상당히 왜곡시켜왔습니다. 실제로 보면 우리가 말하는 착하다는 사전적의미의 선하다는 말에서 많이 벗어난것입니다. (아니면 사전적의미를 정의한 작가가 오해를 한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들께 칭찬으로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을 때 부모님들께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죠. 즉, 아이들이 착한지 아닌지의 여부는 부모님들의 논리에 맞을때 결정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착한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녀들을 키우게되면 똑같은 방식으로 훈계를 하죠. 그렇다면 그 부모님의 사상은 어디에서 온걸까요? 대체로 부모님의 사상은 대대로 물려받은 사상일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유교는 우리나라의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그러한 영향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사상을 버리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사상은 유교입니다. 그리고 유교가 우리가 말하는 착함 또는 선한것입니다.
또한 종교집단에서 제시하는 선함의 기준은 서로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종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경우가 많은데, 각 종교의 기준에는 각 창시자의 민족적인 사상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의 경우 히브리인들 즉, 유대인들의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종교집단 내에서 말하는 선함의 기준과 우리 사회내에서 말하는 선함의 기준은 상당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기준들의 모순들에서 스스로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법에 제시된 어떤 기준을 한 종교집단에서는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로 군대에 가는 것을 죄악으로 여긴다던가 육식을 피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악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종교집단내에서도 선택이가능하죠. 물론 시선들이야 약간 따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릴레이를 시작하신 분이 쓰신 주제설명을 보니 도덕적으로 산다는 말과 착하다는 말이 같은 것으로 씌여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도덕교과서나 우리 사회가 기준으로 삼는 윤리교과서에 씌여진 대로 사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걸까요? 혹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 그런 사람인가요? 이 질문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는 건, 우리나라 헌법 또는 도덕교과서에 씌여진대로 산다는 것이지 다른 타 종교나 다른 곳에서 말하는 그런 선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선하게 산다는 건, 유교사상에 맞게 살면서 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건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어떠한 나라에서든 법을 어기면 징역을 살고 그에 맞는 형벌을 내립니다. 누구도 이런 형벌을 좋아하지는 않죠. 그렇기에 법을 어기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자신의 생활에 해가 가지 않으려면 말이죠. 하지만 법을 조작하고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사람들은 법은 어기지 않았지만,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사람이죠. 반대로, 선을 베풀기 위해 어떤 사람을 도와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탈옥을 한 사람이라고 친다면, 그 사람은 올바른 행동을 했지만 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이 두가지 예 모두 선하다는 판정을 받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한 분야를 어겼기때문이죠.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완벽하게 선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물론 종교계내에서 선한사람과 우리 사회에서 선한사람의 기준이 다르니 차이점을 극복하는 건 각 개인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한가지 기준만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를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떤 무엇하나도 완벽한것이 없기때문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올바른 행동이지만 다른 지방에 갔을때는 전혀 환대받지 못하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 각각의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회를 이룹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언제나 논쟁이 일어나겠죠. 서로 자신이 맞게 생각한다고 할겁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결코 조용하지만은 못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게된 제 취지가 여기있습니다. 한가지 생각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충분히 상대방의 입장을 숙고한 후에 판단을 해야지 세상이 평화로워 진다는 것이죠. 결코 우리나라에서 착하게만 살아서는 세계 평화를 이끌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사상이나 종교문제가 적기로 유명합니다. 요즘 웹상이나 각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이렇다할만 축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족도 단일민족이고 언어도 하나요, 사상도 같은 사상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민족성은 지금까지 장점으로 여겨졌습니다만 이제 우리의 미래는 어떠할지 생각해 봐야하겠지요.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언어학습열풍만봐도 그렇죠. 일본어 영어로만이 아니라 아랍어 중국어 스페인어등 각국의 언어학습의 열풍도 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차 세계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족성 특성상의 문제점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쁜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사상의 대립이 역사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외국과의 경쟁에서 고립될지도 모릅니다. 중국만봐도 시장의 분석이 상당히 까다로운 곳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많기때문에 한국같은 단일시장에서 가능한것이 중국시장에서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한가지 사상만을 가진 국가에서 다원화된 사상을 가진 국가로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른 사상들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포용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꾸려나가야합니다. 미래의 세상은 이미 다가와있습니다. 외국은 이미 더이상 먼나라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동료로 다가와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고자한다면 많은 것을 허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착하게 산다는 말은 죽은 말이라고 생각합시다. 색안경을 벗고 더 넓은 생각을 포용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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